[대전시민뉴스 김진한 기자] 미용실에서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대부분 바닥을 쓸어내는 순간 쓰임을 다한다. 김순호 새론뷰티헤어 대표에게 그때부터 창작이 시작된다. 색을 입혀 꽃과 나무를 만들고 개인이 지나온 흔적을 한 화면에 담아낸다.

2004년 미용장을 취득한 그는 현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사단법인 인천 미용장협회 지회장도 맡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대한미용사회 중앙회 강사와 전국 위생교육 강사를 지냈으며 대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고구려 고분벽화 등 역사 자료를 토대로 고전머리를 복원·재현하는 연구에도 참여했다.

시장배 헤어쇼 연출을 비롯해 지역 신기술 및 상징물 발표, 전문서적 출판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러한 과정은 익숙했던 직업의 경계를 넘어 또 다른 분야로 시선을 돌리는 토대가 됐다.

▲사진설명=캔버스 작품을 제작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배움에 대한 갈증, 새로운 길을 열다

처음 일을 익힐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문적인 교육 체계나 다양한 기법을 접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게 설명이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이어갔고 결국 2004년 숙련 자격을 갖췄다.

김 대표는 “기술적인 답답함을 풀고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끊임없이 학업에 매진했다”며 “그 결실로 자격을 취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표현 방향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헤어쇼와 공예물 제작이었다. 여러 결과물을 만들면서 정교한 능력을 갖춘 종사자들이 기술자나 공예인의 범주로만 인식되는 데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림과 맺은 인연도 영향을 줬다. 집에는 석고상과 화구가 놓여 있었고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했다. 이후 정밀묘사와 인물화를 공부하면서 시각적 표현에 관심을 키웠다.

오랜 실무와 회화에 대한 호기심이 만난 지점에서 눈에 들어온 재료가 모발이었다. 잘라내면 버려지는 부산물이지만 개인의 DNA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역사를 예술적인 매체로 담아내고 싶어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설명=작업실에 전시된 작품들. /사진=본인 제공


탈색 거쳐 꽃과 나무로… 회화와 조형의 만남

제작법은 크게 두 갈래다. 먼저 탈색을 거쳐 본래 빛깔을 뺀 뒤 원하는 색감을 더한다. 이후 식물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어 캔버스에 배치한다. 헤어디자이너로 쌓은 감각이 조형 방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추상화와 콜라주를 결합하는 방법이다. 주제와 감상을 그림으로 나타낸 뒤 실제 가족 구성원에게서 나온 모발을 구도에 맞춰 더한다. 서로 다른 결을 활용해 함께 살아온 시간을 시각화한다.

버려질 수 있는 것을 다시 활용한다는 데에는 단순한 재사용 이상의 가치도 담겨 있다.

김 대표는 “부산물에 불과했던 것에 새로운 생명과 색을 입히고 한 사람과 한 가족의 삶과 역사를 캔버스에 영원히 기록하는 과정”이라며 “고객의 머리를 만지던 손끝의 감각이 작품으로 이어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미용인의 예술적 가능성 보여주고 싶어”

앞으로는 현업에서 쌓은 정교함에 추상성을 더해 기존 직업 영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염색과 결을 다루며 익힌 방식 역시 작품을 구성하는 도구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는 “헤어디자이너로서 쌓아온 손끝의 정교함에 현대미술의 추상성을 더해 미용인이 왜 이미 뛰어난 예술가인지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버려지는 순간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소재가 그의 손에서는 기록물로 바뀐다. 사람에게서 남은 흔적에 형태를 부여하고 지나온 시간을 보존하는 시도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익힌 솜씨는 이제 삶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수단이 되고 있다.

본지는 버려질 수 있는 재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독창적인 표현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김 대표의 행보에 주목했다. 기능인으로 성장한 과정부터 색다른 창작에 도전한 계기, 제작 방식과 향후 계획까지 직접 들어봤다.

※ 이 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