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뉴스 김주용 기자] 급하게 70만 원이 필요하다. 금융회사에서는 더 이상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SNS와 커뮤니티를 검색하다 우연히 상품권 예약판매 글을 발견한다. 특수한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은 간단해 보인다. 판매자가 미래에 상품권 100만 원을 넘기기로 약속하고 지금 구매자에게 70만 원을 받는다.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상품권을 미리 싸게 파는 것이니 대출도 아니고, 이자도 없다고 한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것보다 기록도 덜 남는다는 설명까지 붙는다. 그런데 약속한 날까지 상품권 1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추가 비용이 붙고 독촉이 시작된다. 다른 상품권 거래를 일으켜 앞선 거래를 막으라는 제안까지 들어온다. 한 번의 예약판매가 다음 거래를 부르고, 어느 순간 판매자는 자신이 상품권을 판 사람인지 돈을 빌린 사람인지조차 알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2026년 정부가 이 거래를 불법사금융의 새로운 형태로 정조준한 이유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 법무부, 금융감독원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범정부 불법사금융 근절 TF는 외관상 상품권 매매를 가장하더라도 거래의 실질을 고려해 상품권 예약판매에 대부업법이 적용될 수 있으며 등록 없이 이러한 거래를 반복하는 경우 불법사금융업자로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카페, SNS, 익명 메신저 등이 사실 이러한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카페 폐쇄와 유사카페 개설 금지, 운영자에 대한 수사 확대까지 추진하기로 했다.
“매매계약서를 썼다고 매매가 되는 것도, 할인했다고 대출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법무법인 대련 부대표 황진섭 변호사는 “대부업법상 금전의 대부인지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거래에 붙인 이름보다 실질적인 명목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하면서 상품권이라는 익숙한 상품 뒤에 대출이나 특수한 거래의 목적이 숨어 있을 수 있는 점과 그 부분을 수사기관에서 혐의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였다.
대법원은 2019년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할인 매입한 사건에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대부라고 하려면 적어도 일정 기간을 두고 장래에 일정한 금액을 돌려받는 것을 전제로 돈을 교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신용을 제공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당시 사건에서는 업자가 의뢰인의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고 돈을 지급하면 당사자 사이의 거래가 종료됐다. 이후 업자가 상품권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의 구조였기에 이를 의뢰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나중에 원리금을 돌려받는 것과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해당 할인매입을 대부업법상 금전대부로 인정한 원심판결이 파기됐다.
이 판결은 지금의 상품권 예약판매 논란에서도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한다. 예컨대 내가 가지고 있는 10만 원권 상품권을 다른 사람에게 9만원에 넘기고 거래가 끝났다면 통상적인 상품권 매매에 가까울 수 있다. 반면 지금 상품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달 뒤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넘기겠다고 약정하고 70만 원을 먼저 받은 뒤, 사실상 70만 원의 자금을 사용하고 미래에 100만 원 상당의 경제적 가치를 반환하는 구조라면 단순한 할인매매와는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황진섭 변호사(법무법인 대련 부대표)는 “상품권의 할인율 하나만 계산해서 대부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으며 상품권이 실제 존재했는지, 돈을 먼저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미래에 무엇을 얼마만큼 반환하기로 했는지, 거래가 반복됐는지, 판매자가 상품권을 마련하지 못하면 어떤 책임을 지도록 했는지, 상대방이 사실상 자금융통을 업으로 하고 있었는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동영상=법무법인 대련 공식 유튜브.
상품권이 거래에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불법 대부로 단정할 수도 없고, 반대로 계약서에 상품권 매매로 명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부업법 적용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수사에서는 돈이 먼저 교부된 경위와 장래 반환해야 하는 경제적 가치, 거래의 반복성, 수수료 구조 등을 종합해 실질적인 금전대부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품권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돈의 흐름과 시간을 봐야 하는 초기 수사단계의 중요성”
처음부터 상품권을 마련하거나 제공할 의사·능력이 없으면서 상대방을 속여 돈을 받았다면 사기죄 성립 여부는 별도로 검토될 수 있다. 반대로 실제로 상품권을 조달해온 거래관계가 지속됐고 급전융통을 목적으로 반복적인 예판 구조가 형성됐으며 상대방도 이를 알고 있었다면, 단순히 약속한 상품권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결과만으로 처음부터 편취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는 개별 증거를 따져봐야 한다.
결국 한쪽에서는 대부업법상 불법사금융인지, 다른 한쪽에서는 형법상 기망과 편취의 고의가 있었는지라는 서로 다른 질문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법무법인 대련 김범식 대표 변호사는 “상품권 예약판매 사건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지위가 단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면 마지막 거래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최초 거래부터 상품권이 실제 공급된 내역, 입·출금 흐름, 상대방과 주고받은 대화, 할인율과 거래주기, 미이행 시 추가 부담의 구조 등을 전체적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3월부터는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신고하면 전담자를 배정해 불법추심 중단과 전화번호·계좌 차단, 채무자대리인 지원, 경찰 수사와 소송지원 등을 연계하는 원스톱 지원체계도 운영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상품권 예약판매 피해 역시 이 지원대상에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오늘 70만 원을 받고 한 달 뒤 100만 원을 돌려주는 경제적 구조라면, 그것을 상품권 예약판매로 부르는 호칭 만으로 모든 법률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상품권을 할인해 거래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인 매매까지 사채라고 몰아서도 안 된다. 매매와 대출을 가르는 것은 계약서 맨 위에 적힌 제목이 아니라 거래가 끝난 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다시 갚아야 하는가다. 상품권은 이름을 바꿀 수 있다. 계약서의 제목도 바꿀 수 있다. ‘할인’, ‘예판’, ‘선구매’, ‘정산’이라는 표현으로 돈의 성격을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에는 반드시 기록이 남는다.
※ 본 사례는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의 권리 보장과 절차적 공정성 확보를 위한 변호인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것으로, 법무법인 대련은 사건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해 법률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 칼럼 자문. 황진섭 변호사(법무법인 대련)